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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임권택의 아흔네 번째 영화이다. 아마 아무 설명 없이 영화를 보았다면 당황했을 지도 모른다. 이 영 화는 여든일곱 살 치매 든 모친의 삼일장 장례식이 이야 기의 전부이다. 그런데 제목이 '축제'이다. 임권택은 단지 이 제목을 아이러니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남 겨진 우리에게 질문한다. 당신에게 장례란 무엇입니까. 한 가지 더. 그런데 떠나간 고인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고 간 것입니까.

 

고인과의 마지막 작별인사. 서울에 사는 소설가 준섭은 치 매에 걸린 어머니에 관한 소설을 쓰다가 부고 소식을 알 리는 전화를 받고 가족과 함께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간다. 여기가 영화의 첫 장면이다. 약간의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의 원안을 쓴 사람은 소설가 이청준이다. 이 이야기가 이청준 작가의 집안 자서전은 아니지만, 그 자 신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운 마음의 제사 치레인 것은 사 실이다. 이때 임권택은 이 이야기가 자신의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치러진 장례식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움직 였을 것이다. 는 좀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장례식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평행으로 이준섭 작가가 쓴 동화책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동화책이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이다. 어린 딸 은지는 할머니가 나이 들어 돌아가실까 걱정이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제까지 세상을 살아온 모든 지혜와 경험을 모두 나누어주고 사라지는 것일 뿐이며 그렇게 은지과 세상에 남는다는 걸 가르쳐 준다. 이청준 작가는 이 이야기를 임권택이 영화를 찍는 현장을 지켜보면서 썼고, 그걸 다시 찍어서 영화의 일부로 만들었다.

 

는 한편으로는 호남의 전통 장례식의 절차를 그 안에서 살아왔고 그걸 지켜보았던 그 자식들만이 찍어 낼 수 있는 디테일의 세계 안에서 하나씩 그 어느 하나 놓치는 법 없이 차례로 따라가면서 진행해간다. 예의를 갖추었지만, 문상객들은 때로 질펀하고 또 한 편으로 상 주를 위로하기 위해 시답잖은 농을 걸면서 그렇게 하나씩 슬픔을 건너간다. 장례도 일상의 연장이라 서로 제 삶이 바쁘고 고단하여 얼굴도 보지 않고 지내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큰 소리가 나오지 않을 리 없다. 임권 택은 거의 카오스와도 같은 이 절차 안에서도 대가다운 솜 씨로 큰 맥을 놓치지 않으면서 다른 한 편으로 어느 인물 하나 소소히 다루는 법 없이 그들을 자신의 한 가족처럼 살려낸다. 그 인물들이 육자배기 같은 욕설을 늘어놓을 때도 정을 잃는 법이 없고, 그러면서도 무거운 절을 올 리면서 어머니와 작별을 준비하고 있는 마음의 비애를 잊지 않는 것은 이청준의 깊은 맛이 우러나는 녹차의 향과도 같은 대사들 덕분이다. 는 위대한 두 예 술가의 기품 있는 협연이자, 서로 존경심을 품고 인사 를 나누는 세션이며, 그 두 사람 모두에게 각자의 방식 으로 고인이 된 어머니에게 바치는 사모곡의 노래이다. 하지만 임권택과 이청준은 여기서 더 밀고 나아간다. 장례식과 평행으로 진행되는 동화책의 이야기 장면들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임권택의 영화에서 가장 맑고 영 롱한 씬들이다. 아니, 차라리 보고 있는 동안 정화되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까지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영화 에서 일곱 번 나누어 진행되는 동화책의 장면들에서 임권택은 어떤 기교도 부리지 않는다. 그저 어린 은지 에게 자기의 지혜, 살아온 경험, 그 모든 시간의 부피와 두께, 아니 삶 전체를 남겨두고 떠나가는 할머니가 얼 마나 고마운 분이었는지를 가까스로 자신의 눈물을 참 아가면서 마치 하늘을 쳐다보듯이 찍어나간다. 아마도 그래서 그 장면들은 시간이 지나면 마음속에 마치 맑고 푸른 하늘의 색채처럼 기억에 남게 될 것이다.

 

집안의 미운 오리였고, 그래서 일찌감치 집을 떠난 용순은 장례식에 나타나 빈정거리다가 준섭의 동화책을 모두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그 책이 자기를 위한 책 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장례식은 끝난다. 할머니는 이제 떠났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이 모두 모여 가족사진을 찍을 때 구석에 부끄러워하며 어색하게 서 있는 용순을 부를 때 우리는 신바람 나서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을 것이다. 할머니가 남겨준 것, 그리고 우리가 왜 장 례식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떠나간 자의 마음. 장례는 얼마나 기쁘고 지혜로운 것인가.

 

 

 

정성일 영화평론가,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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