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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 이야기

[국내리포트] 우리나라의 전통놀이를 찾아서2

  •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12-11-22 조회수11023

3. 고누놀이

 

 


 김홍도 고누놀

 

고누놀이란?  놀이 중 언제 어디서나 쉽게 놀 수 있는 것이 고누이다. 즉 땅에 그려 놀기도 하고 종이나 나무에 금을 그을 수 있는 도구가 있는 곳이라면 쉽게 그려서 놀 수 있고 노는 종류가 다양하여 여러 번 놀다 실증이 나면 노는 방법을 달리하여 재미있게 노는 놀이이다.

 

고누의 한자어를 지기(地基)라 부르는데, 이는 땅에서 바둑처럼 말을 놓아 노는 놀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즉「땅에다 그림을 그려 노는 바둑놀이」이다.  또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고대 고누의 전부가 참고누를 칭한다. 참고누는 말이 세 꼭지점을 나란히 차지하면 ‘곤’이라 외치고 상대방의 말을 따내는 놀이이다.

 

*고누의 역사
 고누가 언제 시작 되었냐는 정확하게 기록된 것이 없다. 다만 일찍부터 놀았던 놀이이며 세계적인 놀이이므로 각 나라마다 다양한 방법의 놀이가 전하여 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 부여의 부소산성 성동에 참고누가 새겨져 있어 삼국시대에 고누놀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황해도 봉산군 원산리의 11세기 초 청자가마터에서 참고누가 그려져 있는 청자편이 출토되었으며, 시기별이나 지역의 분포가 한반도 전역에 걸쳐 다양하게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고누」는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까지 널리 놀았던 놀이임을 알 수 있다.

 

 

고누의 노는 방법

 


고누의 노는 방법은 굉장히 다양하다. 밭고누, 호박고누, 동서남북, 왕고누, 우물고누, 줄고누, 참고누, 팔팔고누, 포위고누, 장수고누 등 여러가지의 노는 방법이 있다. 이 중에 참고누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자.

 


 


위에 보이는 것이 참고누 판이다. 말판을 위 사진과 같이 그리면 각 선의 교차점(꼭지점)이 24개 생긴다. 전반전에는 여기에 각각 말을 하나씩 놓아 자기 말 3개가 나란히 놓이게 되면 <고누(곤)>가 된다. 그리하여 <고누(곤)>를 만든 사람이 상대방이 놓은 말 중에서 자기 임의대로 말 1개를 뗀다. 이렇게 말을 떼어낸 자리에서는 아직 놓지 않는 자리에 말을 다 놓을 때까지 말을 놓지 못한다. 그래서 떼어낸 자리에 다른 색의 표식 말을 놓아둔다. 그런 후 말을 놓을 자리가 없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말판 위에 후반전으로 표식 말을 제거하고 그 다음부터는 말판 위에 놓은 말들을 움직여 <곤>을 만들고, 상대편 말을 떼어낸다. 말을 떼어낼 때에는 상대편이 <곤>을 만들지 못하도록 말을 골라 떼어낸다. 어느 쪽이든 <곤>을 만들 수 없게 되면, 즉 남은 말이 3개 이하가 되면 진다.

 

 

마지막으로 우리 선조들의 전통놀이에 대하여 하나 더 알아보자

승경도
승경도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노는 윷놀이이다. 윤목을 굴려 윤목에 적힌 숫자를 읽어 움직이는 게임으로 여기서 ‘승경도’란 「벼슬살이하는 도표」라는 뜻으로 벼슬자리를 승진시켜 이기는 놀이이다. 이는 조선시대 벼슬자리가 많고 복잡하여 외우기가 어려우므로 놀이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습득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부녀자나 여자아이들이 노는 것은 아들이나 남편, 혹은 아버지가 높은 관직으로 승진하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은 놀이이다. 요즘 시대에도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던 ‘부르마블’이라는 게임과 진행방식은 약간 비슷할 것 같다. 부루마블 게임을 하듯 즐겁게 ‘승경도’놀이를 즐기는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해보니 무척 설렌다.

 

   

조정문무사판

 


“디지털시대가 가속화되는 세상속에서 우리는 전통놀이의 소중함을 쉽게 잊는 것 같다. 하지만 놀이와 게임은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전통 놀이는 놀이의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중요시하는 반면 서구의 게임이나 스포츠 등은 승/패만을 나누어 결과를 매우 중요시하게 여긴다.”

(전통문화컨텐츠연구소 「연」김소영 대표)

 

전통놀이가 사라지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 들이 있는데, 그 원인을 하나씩 알아보자!

 

 

전통놀이가 사라지는 원인

1.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의 부족도 원인이지만, 일본의 침략에 의한 식민지 시대의 한국민속말살정책으로 인해 한국고유문화의 단절과 일본문화의 강요 그리고 한국전쟁 후 갑작스런 외래문화의 무분별한 수입은 한국적인 놀이를 미개하고 후천적인 놀이를 미개하고 후천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하였다.

 

2.교육적인 노력의 부족 유아교육에서부터 먼저 한국의 문화를 가르치고 그 후에 외래문화를 가르쳐야 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통적인 전래문화를 접할 기회가 부족하다.

 

3.핵가족의 문제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에서 핵가족으로 또한 산아제한에 의한 형제 부재의 현실에서 예전의 형제간의 놀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전래놀이의 장은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전통놀이의 계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부재는 전통놀이의 소멸에 큰 영향을 미쳤다.

 

4.전통놀이에 대한 연구 및 개선에 대한 노력부족 전자산업의 발달로 컴퓨터를 이요한 각종 놀이가 개발되는 데 비해 전통사회의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전통놀이를 시대적 변화에 따라 아동들의 생활문화에 맞게 개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부족하였다.

 

*참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놀이 중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놀이가 있다. 이 놀이는 조선 말의 교육자, 계몽운동가이며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인 남궁억(南宮檍, 1863년 12월 27일 ~ 1939년 4월 5일)선생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놀이의 유래가 무척 흥미로운데 조선시대에는 “무궁화삼천리”라는 말처럼 한반도에 수많은 양의 무궁화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이르러 일본이 뽑고 불태워버린 무궁화만해도 8만 그루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 당시 조선을 침탈을 한 일제가 조선을(오뚜기)로 비유하고 「오뚜기가 넘어집니다,[일본말 : 다루마상가고론다] 」라고 조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가지고 놀이를 만들었고, 이에 그 놀이의 리듬을 그대로 본 따서 우리 국화인 ‘무궁화’를 빗대어 “조선의 무궁화를 꽃 피운다”라는 의미로 우리의 놀이로 변모하고 유행시켰다고 한다. 선조들의 지혜와 나라사랑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백범 김구 선생은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마지막으로 백범일지 중 김구선생의 글로 마무리를 지어본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 김구 백범일지 중에서 ?

 

 

대한민국이 드높은 문화의 힘을 가지기 원했던 “백범김구” 선생의 말씀처럼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놀이와 무형유산들이 잊혀지지 않고, 우리들의 생활 속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국립무형유산원 기자단

김현두


자     문

전통문화콘텐츠연구소 “연演” 김소영 대표


참고문헌

“놀이관” ?연기향토박물관
“전통놀이 놀이학습 교육메뉴얼” ? 김소영.김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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