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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 이야기

[국내리포트] 한국고건축박물관의 전흥수 대목장의 시연회 현장

  •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12-11-26 조회수6955

 

 

대목장(大木匠, 중요 무형문화재 제74호)이란 무엇일까? 집 짓는 일의 전 과정,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기술부터 와장·드잡이·미장이·단청장 등과 함께 집의 완성까지 모두 책임을 지는 목수를 말한다. 현대에 들어선 목조만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변모해 가고 있지만 그래도 한옥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입지는 가장 높다.

 

전흥수 대목장은 그러한 목수로서 창덕궁, 동대문, 예산 수덕사, 공주 마곡사, 보은 법주사 등 중요한 건축문화재들을 손본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이다. 전흥수 대목장은 18세의 어린 나이에 故 김중희 선생의 문하생으로 한식목공일에 입문하여 현재 75살의 나이가 되기까지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3명의 대목장으로 전흥수 대목장을 포함해서 신응수 대목장, 최기영 대목장을 꼽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연배가 높다. 얼마 전 시험이 있었던 문화재수리기능인협회의 회장직이었다가 현재 명예회장으로 있으며 예산 고건축박물관의 관장이기도하다.

 

한국고건축박물관 전경


10월 27일 전흥수 대목장의 시연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예산에 있는 한국고건축박물관을 방문했다. 한국고건축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건축문화재를 테마로 한 박물관이다. 그래서인지 모든 건물이 한옥으로 되어있고 마치 사찰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내부는 건축문화재를 테마로 잡아서 그런지 다양한 모형과 기와들로 진열되어 있었다. 내부가 수도 없이 많은 모형들로 진열되어있는데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중요한 건축문화재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큰 볼거리를 제공했다.

 

시연회가 있는 날, 비가 와서 한국고건축박물관 내부에 있는 공방에서 시연회를 했다. 공방 내부에는 전날까지 일을 하고 있던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는데 물량을 산출한 내용과 현대식 도면을 목수식 도면으로 바꾼 것들이 흥미로웠다.

 

 

 

바로 옆에는 치목을 하던 나무들이 쌓여있었는데 조각이 아주 치밀하고 섬세했다. 얼마 전까지 문화재수리기능사(대목)을 연습했던 나는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상상할 수 있었다.

시연회는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실시되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형문화재를 보여줌으로써 각자 가지고 있는 무형문화재 대중들에게 알리고 동시에 무형문화재 보유자의 전수현황을 확인 할 수 있는 자리가 되고 있었다. 후에 들은 얘기인데 대목장의 경우엔 앞으로는 좀 더 실제적인 무형문화재를 시연하기 위해서 공방에서 보여줄게 아니라 실제로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시연회를 개최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시연회는 문화재보호재단에서 나온 사진가들이 그들의 시연을 촬영하기 위해 있었다. 그들에게 물어보니까 이 행사를 촬영하고 기록하는 일을 하기 나왔다고 한다. 나는 재작년에도 전흥수 대목장의 시연회에 온 적이 있는데 그 땐 동영상으로 촬영하던 것을 이제 사진으로 촬영을 하고 있었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열람의 편의를 위해서는 사진이 확실히 더 좋은 방법 인 것 같다.

시연회는 위 사진의 나무부재들을 조립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전흥수 대목장이 직접 앞에 나서서 하나하나 설명하면 전수자들이 망치로 치며 조립을 하였다. 완성된 집만 보는 일반사람들에게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대략적이나마 보여줄 수 있고 결구 내부 모습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갈증을 해결 할 수 있었다. 나는 두 번째 갔지만 결구하는 모습은 아직 신기하고 내가 모르는 부분이 많은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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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날 전흥수 대목장은 시연회 내내 기운 없는 모습이라서 걱정 했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한다. 젊은 날 혈기 넘치는 기운으로 목수 일을 했을 대목장인데 많이 안타까웠다.

시연회가 끝난 후에는 전흥수 대목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무형문화재를 전승해야 할 무형문화재보유자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했고 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Q :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죠?
A : 옛날 먹고 살자고 시작하게 되었다. 선생님(故 김중희)이 여기 근처에 살았는데 가까워서 시작해서 평생을 하게 되었다.

 

Q : 일을 배우면서 힘들 지 않았나요?
A : 어려웠다. 지금처럼 모든 작업이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수작업이라 많이 힘들었다. 특히 조각을 하는데 손을 많이 다쳤다. 하지만 요즘 기계를 사용하다보니 작업이 많이 빨라졌다. 현장에서는 조립만 한다.

 

Q : 평소에도 오늘 시연회처럼 제자들에게 기계를 쓰지 않는 전통방법을 가르치나요?
A : 많이 가르친다. 가르치는 것은 기본이다. 예전에는 7~8년 (임금을 받지 않고) 배우기만 했는데 요즘은 처음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도 일당 5만원은 줘야한다. 그런데도 예전보다 못하더라. 그런데도 말만 잘한다. 대학교 나와서 이론만 많이 알아가지고는 돈 버리고(버리게 만들고) 집 버린다(버리게 만든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Q : 대목이 잘 계승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 있을까요?
A : 제자가 잘 배워두면 된다. 잘 배워둬야 전수가 이루어진다. 대충해서는 안 된다. 이유를 막론하고 잘 배워야 한다. 지금 제자가 10명 정도 있다. 예전에는 120명 있었지만 (사업을 키우기엔)나이도 나이고 시대가 그렇지 않다. 제자들이 배울 만큼 배우고 나면은 독립시켜준다. 지금은 많은 제자들이 전국에 퍼져있다.

 

Q : 다른 대목장들과 모여서 대목의 발전에 대해서 회의를 하거나 하지는 않나요?
A : 내가 대목장 중에 나이가 가장 많다. 나는 그런 자리에 모이는 것이 나쁘게 생각하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더라. 다들 욕심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대목장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이 많지 않다고 하셨다. 각자 추진하는 시연회만이라도 대목장들이 모여서 서로 스승에게 배웠던 기술교환이라든지 자신들이 참가했던 문화재수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 시연회가 좀 더 발전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상상해보았지만 현실적으로 워낙 바쁜 사람들인데다 어쩔 수 없는 경쟁업체 사이라 서로를 경계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제 3자이자 인솔자격인 문화재청에서 친목을 도모하는 장을 주기적으로 열어주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글·사진 : 박민창 기자 무형문화원 기자단
한국건축을 배우고 있는 학생이다. 항상 건축문화재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으며 건축문화재가 사회의 문화컨텐츠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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