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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 이야기

[국내리포트]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12-11-27 조회수9210

중요무형문화재 제 23호 가야금산조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

 

 

여러 유파의 가야금 산조가 있지만, 가야금 예능보유자 양승희에 전승되고 있는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는 가야금산조의 창시자로 일컫는 김창조의 친손녀이자, 김창조의 수제자였던 한성기에게 산조를 배운 故 김죽파 예능보유자의 가락을 오롯이 잇고 있다.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는 김창조에서 한성기로 이어지는 옛 산조 가락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산조의 깊고 넓은 맛을 오롯이 맛볼 수 있는 산조로 평가되고 있다. 1978년 67세에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를 통해 가야금에 대한 이해와 전승을 소개하고자 한다.

 

 

가야금의 유래

한국의 대표적 현악기인 가야금은 6세기 중엽 가야국에서 탄생하였다.
『삼국사기』에는 가야국의 가실왕이 중국의 쟁을 모방하여 가야금을 만들고 성열현에 사는 악사 우륵에게 가야금을 위한 작품을 위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유의 현악기‘고’
이 최초의 기록 이전에 삼한시대의 현악기 중 우리 고유의 현악기가 있었다. 이는 ‘고’라는 이름으로 긴 네모 모양의 울림통에 줄을 건 형태로 연주자가 앉은 자세로 악기를 무릎에 올려놓고 연주한다는 기록 또한 전해 온다.  이러한 기록을 뒷받침해 주는 여러 도상자료가 오늘날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흙인형의 주악토우는 옛 현악기의 뚜렷한 모습을 보여준다.

 

 

 

가야금장식의 항아리 (미추왕릉에서 출토, 경주박물관소장)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제16지구 고분 제30호분에서 출토된 ‘목 긴 항아리 장식’에 표현된 여러 장식이 있는데 거북이,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 새, 오리 등의 동물과 아이를 가진 임산부가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등이 재밌게 표현되어 있다. 이 중 임신부가 연주하는 악기의 모양과 크기, 연주방법은 가야금 탄생 이전의 현악기와의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모습이다.  고대 전통 현악기‘고’가 이렇듯‘가야고’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뚜렷이 부각된 것은 가야금의 한 단계가 발전된 형태로 출현됨을 알 수 있다.

가야, 그리고 신라, 통일신라를 거쳐 오면서 가야금은 대표적인 음악형태의 대금, 중금, 소금에 이어 거문고, 가야금, 향비파의 ‘삼현삼죽’ 구성에서도 그 자리를 담당해오며 조선시대 궁중음악뿐만 아니라 민간의 풍류음악에서도 중요한 악기로 자리매김을 한다.

 

 

신윤복의 ‘청금상련’, 간송미술관소장

 

1914년 가야금을 연주하는 소녀


 

 

 

*산조의 출현

 

 

   

가야금산조 창시자 김창조, 김창조의 가야금(보유자 양승희 소장)

 

 
19세기 말, 산조라는 기악독주곡이 탄생된다. 산조는 민속악 즉, 대중음악의 한 갈래라 할 수 있는데 순전히 민간인의 적극적 음악 참여 활동에 의해 발생한 장르라 할 수 있다. 이 산조라는 새로운 장르에 우리의 대표 현악기 가야금이 제일 먼저 산조의 형성에 일조하는데, 그것이 바로 전라남도 영암사람 김창조에 의해 처음으로 가야금산조가 연주된다.

김창조에 대해 전해지는 일화는 극히 일부이다. 그의 친손녀이자 훗날 가야금 보유자가 된 죽파(본명 난초)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남아 있던 몇 가지 단편회고가 전부이지만 그가 남긴 가야금 선율과 가야금이 현재 중요한 그의 흔적이다. 김창조에 의해 뿌리내린 산조는 초기 제자 한성기, 최옥삼, 안기옥에게 전승되어 한성기의 음악은 김창조의 손녀 죽파에게, 최옥삼의 음악은 함동정월에게, 안기옥의 산조는 성금연에게 전해진다.  

 

       

 

 

故 가야금산조보유자 김죽파(왼쪽), 양승희보유자와 김죽파와의 한 때 (오른쪽)
 

 

김죽파류 가야금산조의 음악적 특징

 

*푹 익힌 곰삯은 맛
김죽파(1911~1989) 가야금 산조의 계보는 가야금 산조를 창시한 김창조(1856~1919)에 뿌리를 두고 김창조 제자 한성기 가락에 죽파 자신의 독자적인 가락들을 넣어 높은 수준의 예술 세계로 승화시킨 산조이다. 김창조의 직계손녀인 죽파는 조부로부터 직접 사사하였으며 김창조 산조 459가락중에서 112가락이 죽파 산조에 원형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죽파 산조의 짜임새는 다스름, 진양조, 중모리 , 중중모리, 자진모리 , 휘모리, 세산조시의 장단 배열을 갖추고 우조, 평조, 계면조, 강산제, 돌장, 경드름, 우조계면조, 우조강산제, 진계면조, 평조계면조, 강산제계면조, 변청계면조, 본청계면조의 선법적 짜임새를 장단과 함께 다양하게 변형시켜 산조의 극치의 미를 이루고 있다.

 

죽파가야금의 “세산조시”가 있는 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세산조시는 자진모리장단이 더욱 빨라져 2분박으로 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산조시는 계면조로 시종일관되는 다른 유파에 비해 강산제에서 4도 아래로 이조한 변청 강산제에서 다시 본래의 강산제로 끝내기 때문에 산조의 끝이 담백하게 마무리된다.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는 긴장과 이완의 미를 통해 끊임없는 생명력을 지니고 뛰어난 형식미와 함께 정통성을 자랑하고 있다.

 

 

* 애제자 예능보유자 양승희
죽파선생과 현 김죽파류 가야금산조 예능보유자 양승희와는 사제관계를 넘어선 돈독한 인연으로 그 여담이 전해져 온다.  
죽파선생은 제자의 독주회를 앞두고 직접 선율을 짜서 완성도를 높여주기도 하였다. 죽파산조의 특징은 진양조의 변청계면조, 본청계면조(20가락)와 중모리 우조(22가락), 휘모리(36가락), 세산조시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중 휘모리 36가락은 본인이 8세 때에 전해들은 김창조 가락들을 짜 넣어 곡의 완성도를 높인 것이다.1986년 양승희 가야금독주회를 위하여 짜 넣은 가락들은 어릴 적 듣던 할아버지의 선율을 61년이 지난 뒤 죽파에 의해 표출된 가락이다.
 
제자가 세상에 선뵈는 첫무대를 계기로 완성된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는 제자에게 온전히 전승되고 있다. 죽파 선생이 유언처럼 자신의 부채에 글을 지어 양승희에게 남긴 가야금전승을 위한 당부의 글이 남아 있다.

 

 

   

  

죽파가 양승희에게 남긴 당부의 편지(1985)(좌),

 양승희의 제1회 KBS국악대상 후 죽파선생과 함께(1982)(우)

 


“유일무이한 나의 제자 승희야. 나에게 계승자가 되랴 일심토록 가시받길,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주저함 없이 지극한 긍지와 인내로 음악에 광명이 올 때까지 분투노력에 굴함이 없기를 진심으로 빌 뿐이다 사랑하는 나의 승희 허투루 생각않겠지. 1985년 죽파”

이러한 무한한 사랑에 제자는 보답이라도 하듯 가야금 산조의 전승을 위한 노력이 이어진다. 

 

 

 

 

 

보유자 양승희 출간 가야금 악보집(좌), 중요무형문화재 전승 발표회(2011)(우)

 

*나보다 네가 더 낫고, 너보다 네 제자가 더 나아야 한다.

 

죽파선생이 생전에 누누이 강조한 말이 있었다.
‘나보다 네가 더 낫고, 너보다 네 제자가 더 나아야 한다’는 가르침.
죽파선생의 단순하지만 뜻 깊은 가르침이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의 올곧은 전승의 원동력이 아닌가 한다.
가야금은 정말 중요하고 대표적인 우리민족의 현악기이다. 천년의 오랜 가야금 위에 아름다운 선율이 얹어지고, 스승과 제자의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해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산조는 오늘에야 완성되는 듯하다.

앞으로도 가야금산조의 역사를 계속되어질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가야금의 이야기는 보유자 양승희에 의해 계속 쓰일 것이기 때문이다.  

 

국립무형유산원 기자단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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