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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 이야기

[국내리포트]옹기장이를 넘어서

  •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13-05-27 조회수5594

 

 

도기와 자기 그리고 옹기

도자기는 도기와 자기를 합쳐서 부르는 용어이다. 도기는 자기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도기는 도토(진흙 성분)를 가지고 만들어 최고 1200도에서 구워지고, 자기는 자토(돌가루 성분)로 만들어서 1200~1400도에서 소성된다. 자기가 생겨난 이후에도 도기는 별도로 우리 생활 곳곳에서 사용되어왔다. 그것은 자기가 더 뛰어난 그릇이 아니라 각기 쓰임새가 다름을 의미한다. 옹기는 이 가운데 바로 도기에 속한다. 수천 년을 전해 내려온 도기. 가만히 그 시간을 음미하고 있자니 투박한 모습에 견주어 상반되는 신비함이 느껴진다. 아직까지 맥을 잃지 않고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음식 문화 때문이 아닐까. 도기가 지금까지 어떻게 사용되어왔기에 수천 년 이어져온 것인지, 변화된 생활 모습에 앞으로 어떤 가능성을 지녔는지 살펴보기 위해 옹기를 조명하려 한다.

 

 

손내 옹기

진안에 뿌리 내린 옹기장 이현배 선생님을 찾았다. 진안군 백운면 정송마을에 자리한 그의 작업장과 집. 공방 이름 손내는 솥을 발음대로 하여 솥이 있는 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곳에서 옹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이십년 정도라 하는데 집 안팎에 어마어마한 옹기의 수는 그 정도 세월이어야 가능하겠지 싶기도 하다. 거실에 모여 있는 오밀조밀 앙증맞은 옹기들이 그런 생각을 들게 했다.

선생은 젊을 적 호텔에서 초콜릿을 만들었다고 한다. 뜻하는 바가 있어, 내면에 간직해 두었던 그것을 풀기 위해 다 버리고 옹기쟁이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벌교와 문경에서 삼년간 문하생 생활을 하고 자리를 찾은 곳이 이곳이다. 고향은 아니고 고향과 그렇게 먼 곳도 아니다.

선생의 첫인상은 남달랐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남다른 모습이 자연스레 퍼져나왔다. 처음엔 내면이 완성된 현자 같았고, 그다음엔 진보 지식인에 실천가적 기질까지 보였다. 진실일 수밖에 없는 수식어는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모처럼 기대치 않은 곳에서 멋진 분을 만나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스콧 니어링의 삶을 추구하였는데, 이 분은 그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풀고 계신 것 같아 부럽기도 했다. 거실에 이리저리 쌓인 책도 그것을 반증하는 듯 했다.

선생은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합한 말이라 했다. 질그릇은 토기이고, 오지그릇은 오짓물(잿물)을 입힌 것이다. 이 옹기는 널리 알려진 대로 숨을 쉰다. 때문에 발효에는 이 그릇일 수밖에 없다. 도기의 맥이 현대까지 이어진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식생활의 변화, 이보다 사회 경제적인 모습이 변화해서 옹기의 수요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선생도 옹기를 전통적인 쓰임 말고 다른 식의 사용을 모색한다고 한다. 주로 식탁에 올리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고 이미 여러 작업을 해온 듯 했다. 그것이 오래된 생각일까, 집 곳곳에서 빠끔 사리에 해당될 조그만 그릇들이 참 많았다.

 

 

 

 

 

 

옹기의 지역색

 

 

 

 

성형기법과 형태에서 지역적 차이가 난다. 흙을 가래떡처럼 둥글게 만든 흙가래(질가래)를 쓰는지, 흙을 넓게 펴서 만든 타래미(질판)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구분된다. 경기, 강원, 경상, 충청 지역에서는 가래떡처럼 둥글게 만들어 옹기를 성형하며, 전라, 제주 지역에서는 점도를 넓게 늘려 만든다. 도자기는 다 코일링기법이라고 해서 흙가래를 이용해 만드는 줄 알았는데 다른 방법도 있다니 반가웠다. 왜 밀대로 밀어만들지 않고 쌓아 올리는 거지 하고서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타래미를 이용하는 기법이 보다 제작 속도가 빠르고 힘이 적게 든다고 하는데 장인의 노고가 들어가는 것에 별반 차이가 있을까 싶다. 손내 옹기는 전라도라는 지역답게 타래미를 이용하여 만든다.

형태에서도 서울 경기 지역의 옹기가 홀쭉하고, 전라도 지역에서는 풍만하면서도 중간보다는 윗배가 나오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일조량, 복사열, 통풍, 공간 활용과 관련한 분석들이 있는데 저런 요인들과 관련지어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

 

 

 

옹기의 외출, 미래의 가능성을 위하여

플라스틱과 스텐레스 용기가 등장하면서 옹기는 발효를 제외한 나머지 기능을 상실하였다. 잘 깨진다. 무겁고 큰 그것은 옥상에 두고 장을 담아 햇빛을 쪼이던지 흙 속에 파묻어 김치를 서서히 익히던지,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는 셈으로 지정받은 자리를 우두커니 지키기 일쑤다. 이것도 주택 이야기지 아파트에서는 가당치도 않다. 김치며 장이며 담기보다 사서 먹는 집이 늘고 있다. 김치 냉장고는 집집마다 필수품이다시피 되어 주택에서도 독에 김치를 담아 놓고 먹는 집은 찾아보기 드물다. 삶의 모습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세상에서 옹기는 설 자리를 점차 다른 것들에게 내줄 수밖에.

해서 이현배 선생님은 옹기를 식탁에 올리는 작업을 했다. 혼자서도 했고, 유명한 디자이너와 공동작업도 했다. 아래 사진은 예올이라는 단체에서 한 프로젝트였는데 옹기를 가지고 청자 유약도 입혀보고 다른 유약도 입혀보고, 한식 차림 뿐 아니라 서구식 차림에도 어울릴만한 형태도 만들어보고 하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하였다.

 

 

 

 

선생 댁에서 본 탐나는 옹기들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는데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전주 한옥마을에 손내 옹기 가게가 오픈했다는 것! 아무래도 진안 깊은 골짜기에 다시 찾아가기 엄두 내기 어려웠는데 비교적 가기 쉬운 전주에 가게가 있다니 다행으로 여겨졌다. 그곳엔 관광객도 많아 우연으로라도 선생의 작품을 만나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니 내가 다 설렜다. 단지 예쁜 그릇들이 아니라 선생의 생각이 묻어나는, 생각하게 만드는 그릇들이니 말이다. 다음 전주 방문에는 이곳부터 들러야겠다.

 

 

 글/사진 황수경

 국립무형유산원 블로그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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