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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 이야기

[국내리포트]궁, 樂악 을 만 나 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13-06-04 조회수6105

중요무형문화재 예능 합동공개행사

 

 

             , 을 만 나 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비 내린 후, 청량한 공기가 더 할 나위 없이 좋은날.

2013년 중요무형문화재 예능종목 합동공개가 시작되는 첫날이다. 한국무형유산진흥센터 주관, 문화재청 주최로 창경궁내 통명전(왕비의 침전으로 사용되던 창경궁의 중궁전)에서 이뤄지는 합동공연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를 시작으로 나흘에 걸쳐 중요무형문화재 제20호 대금정악, 30호 가곡, 23호 가야금산조 및 병창, 그리고 마지막 날 중요무형문화재 제40호 학연화대합설무, 58호 줄타기, 79호 발탈이 합동공개행사로 진행되었다.

    

 

 

 

첫날 본 기자가 관람한 공연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이다.

꺾고 지르며 흘러내리는 자유로운 선율 속에 우리네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 온 음악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금

꿋꿋한 대나무가 더운 숨결을 만나 울리는 한줄기 가락.

대금은 부드럽고 맑고 힘차며 시원한 음색 때문에 가장 유명한 독주악기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특히 대금산조는 다양한 가락의 변화와 대금 특유의 화려한 기법으로 인간의 희로애락을 유감없이 표현해내고 있다.

 

      

대금은 예로부터 우리에게 아주 친근한 악기였다.

고구려 벽화에 가로 부는 젓대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널리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때는 삼죽(三竹)이라 하여 중금(中?) 소금(小?)과 더불어 신라악에 편성되었다.

 

신라의 음악은.. (중략)..삼현(三絃)은 첫째 거문고 둘째 가야고, 셋째 비파이고, 삼죽(三竹)은 첫째 대금 둘째 중금(?) 셋째 소금(小芩)이다. (삼국사기 악지)

 

 

신라 신문왕 때, 동해 한 가운데 솟은 산의 대나무로 악기를 만들어 불었더니 온 세상이 평온해졌다는 만파식적설화도 전해진다

 

대나무로 저[]를 만들어 월성(月星)에 있는 천존고(天尊庫)에 보관하였는데, 이 저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비가 오면 개이며, 바람은 가라앉고 물결도 평온하여 졌다. 그래서 이 저를 이름하여 만파식적이라하고 국보로 삼았다. (삼국유사)

  

 

    대금산조

 

대금산조라는 것은 대금으로 연주하는 산조를 말한다.

산조의 유래를 보게 되면 시나위나 판소리, 민간기악합주곡인 봉장취란 합주곡이 서로 융합이 되어 만들어진 기악독주곡이다. 우리나라 민간기악곡에서 독주곡이 거의 없었던 상황에서 최고의 아름다운 선율들을 모으고 높은 기량을 가진 사람들이 산조란 이름으로 집대성해서 대금이라는 악기에 얹어진 것이 대금산조이다.

 

현재 대금산조는 보유자 이생강과 김동표에 의해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 김동표보유자는 부산을 근거지로 강백천류 대금산조를 전승하고 있으며, 이생강 보유자는 1996년에 한주환류 대금산조로 인정되었고, 현재 한주환류를 비롯하여 이생강류대금산조까지 그 구성가락을 넓혀 전승을 하고 있다.

     

 

             대금산조 연주(왼쪽), 관객에게 대금을 소개하는 이생강보유자(오른쪽, 2013 합동공개행사)

 

 

죽향(竹香) 이생강

 

1937년 일본 동경에서 태어난 이생강은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단소나 피리 같은 관악기를 잘 다루었다.

 

일본서 5살 때 아버지가 피리산조 일본 퉁소를 참 잘 불었어요. 아버지가 악기를 여러 가지 다 해요. 제가 무릎에 앉아서 아버지 부시는 걸 뺏어가 불어요. 퉁소를 조그만 입이 다 들어가서 부는 모양이 어찌 소리를 내느냐 말이요. 그런데 아버지 부는 걸 소리를 내니까 아 깜짝 놀랐죠. 입에 대면 다 소리가 나 그래서 나를 데리고 동경에 국제극장이라고 그 옆에 일본사람이 악기를 가르치는 학원이 있었습니다. 그 학원에 나를 데려가서 테스트를 했어요 .장래성이 있는가 그래서 일본 관악기 사꾸아치를 불고 하닌까 아 선생님 얘는 천재다 아주 신동이니 부는 것만 가르쳐라 그래서 그 때부터 우리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그 때 대금이라고 했지만 손이 닿질 않으니 퉁소를 길게 해서 대금을 짧게 만들어서 주신 것이 대금의 첫 동기가 된 거죠

 

이생강은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온 전 한주환을 만나 진양조부터 대금산조 한 바탕을 모두 사사받았다. 그것이 15살 때의 일이다.

보유자 이생강의 대금산조는 박종기, 한주환을 거쳐 이생강으로 그 전통을 잇고 있다. 타고난 재능과 각고의 노력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명인은 1960년 프랑스에서 열린 제1회 세계민속예술제에 참가하는 것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을 누비며 우리 음악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다.

정통성과 기량을 인정받았지만 그의 음악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산조의 태생이 그렇듯 명인은 늘 대중과 가까이 있다.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대중이 청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 소리를 풀어놓는다.

 

 대나무 관대에서 나오는 은은하고 청아한 음색 그리고 변화무쌍하고 화려한 선율이 만나 소리의 극치를 이루는 대금산조.

그 가락그 가락은 우리 민초들의 애환과 정서를 어루만지며 앞으로도 계속 흘러갈 것이다.

 

 

 

 

글/사진 이주영

국립무형유산원 블로그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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