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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 이야기

학예사가 들려주는 무형유산 이야기ㅣ나전장

  • 작성자임지혜 등록일2018-05-31 조회수3619

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어둠속에 빛을 상감하다, 이종숙 학예연구관

원로 언론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그의 저서 우리문화박물지에서 검은 옻칠 바탕을 어둠에 비유하여 나전칠기를 어둠 속에 빛을 상감하는 기술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둠과 빛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나전칠기의 조형적 특징을 몇 마디 단어로 간명하게 짚어낸 그의 정확함과 통찰력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전(螺鈿)’은 얇게 가공한 조개껍데기를 여러 가지 형태로 잘라 기물의 표면에 상감하여 꾸미는 것을 말하며, 이러한 공예품을 만드는 장인을 나전장(螺鈿匠)이라고 합니다. 기물의 나무바탕을 파내고 나전을 상감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기물 표면에 옻칠을 하고 그 옻칠 바탕에 나전을 붙인 다음 다시 옻칠을 올린 뒤 표면을 연마하여 나전 무늬가 드러나도록 하기 때문에 이라는 말을 붙여 나전칠기라고 일컬어 왔습니다.

(좌)나전화문동경. 통일신라,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우)국보 제140호 사진과 끊음질 기법 사진

나전기법은 중국 당나라 때에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국보 제140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의 나전화문동경(螺鈿花紋銅鏡)은 나전 기법으로 장식한 원형의 청동 거울로서 현존하는 나전 공예품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입니다. 거울의 뒷면은 호박(琥珀), 터키석과 같은 여러 가지 보석류와 함께 나전기법을 활용한 꽃과 동물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당시 고려의 나전에 대해 나전 일은 세밀하여 귀하다고 할 만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나전 기법이 정교하게 발전하였으며, 현재 일본 등지에 전하고 있는 경함(經函) 등의 유물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려 나전칠기의 특징이 정교함과 우아함에 있다면 조선의 나전칠기는 여백과 문양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회화적 효과가 중요한 특징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소나무, 대나무, 매화, 사슴, 학 등 서정적인 문양이 나전칠기에 유행하였으며 나전기법이 소반과 장롱 등의 가구로 확대되어 한층 대중화하였습니다.

나전장은 본래 관장(官匠)으로서 고려시대 왕실 기물의 제작을 담당하던 중상서(中尙署)에 속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도 중앙의 경공장(京工匠)에 소속되어 왕실과 관청에 필요한 나전칠기를 제작하였습니다. 또한 나전칠기가 일반에 대중화되기 시작한 조선 후기부터는 통영을 비롯한 산지에서도 나전칠기가 활발하게 제작되었습니다.

(좌)끊음질로 표현한 문양 사진과 (우)주름질 기법 사진

나전칠기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옻나무 수액인 칠과 자개입니다. 자개의 재료로는 전복, 소라, 진주조개가 주로 사용되며, 특히 남해안과 제주도 근해에서 나는 것이 가장 곱고 질이 좋습니다. 현재 나전칠기로 가장 유명한 지역은 경남 통영이며 강원도 원주는 우수한 옻칠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나전칠기 제작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나무로 기물 형태인 백골을 짜고 표면을 연마하여 고르게 한 뒤 칠죽을 발라 밑바탕을 만듭니다. 밑바탕 작업을 완료한 뒤 표면에 문양 밑그림을 옮겨 그리고 그 위에 부레풀(아교)로 자개를 붙여 나갑니다. 자개를 모두 붙인 뒤 기물 표면에 옻칠을 여러 겹 올려 말린 다음 연마와 광내기 과정을 거쳐 완성합니다.

자개로 무늬를 만드는 방법은 끊음질과 주름질로 구분됩니다. 끊음질은 가장 전통적인 기법으로, 자개를 상사톱으로 가늘게 썰고 칼(각도)로 끊어가며 직선 또는 대각선의 기하학적인 문양을 놓는 것을 말합니다. 이 기법은 고려시대에 시작되어 조선 초기와 중기에는 잘 쓰이지 않다가 후기에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주름질은 실톱을 사용하여 자개를 문양대로 오려내는 기법입니다.

본래 자개를 박는 나전장과 옻칠을 하는 칠장은 각기 분업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나전 제품이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되고 옻칠의 사용이 극히 적어지면서 칠장의 존재는 미미해지고 나전장의 기능 속에 흡수되다시피 하였습니다. 196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 지정 당시 나전칠기장이었던 것을 1995나전장으로 지정 명칭을 변경하고 별도로 지정되어 있던 제54끊음질과 통합하였습니다. 현재 나전장은 끊음질, 주름질 등을 통합해서 각 분야의 보유자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좌)송방웅 보유자의 사진과 (우)이형만 보유자의 사진

1966년 처음 나전칠기 보유자로 인정받은 김봉룡 선생(1902~1994)은 경남 통영에서 일을 배워 강원도 원주의 공방에서 작업을 하였습니다. 김봉룡 선생의 주름질 기법은 제자인 이형만 선생에게 전승되었고, 1996년에 이형만(1946~ ) 선생이 주름질 기능 보유자로 인정되었습니다. 이형만 선생은 충무에 있던 국립 경상남도 기술원양성소에 재학할 때 김봉룡 선생으로부터 그 자질을 인정받았고 우등생 자리도 놓치지 않았다고 합니다.

끊음질 기능 분야에서는 1975년에 심부길 선생(1906~1996), 그리고 1979년에 송주안 선생(1901~1981)이 보유자로 인정되었습니다. 그 뒤 끊음질 기법은 송주안 선생의 아들인 송방웅 선생(1940~ )에게 전수되어, 1990년에 송방웅 선생이 보유자로 인정되었습니다. 송방웅 선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당시로서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19세 때 부친의 문하에 입문하여 10년간 기술을 익혔는데, 어린 기술선배들이 가하는 정신적 고통과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언행들을 참고 견뎌야만 했다고 합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전통 나전칠기 기술을 꿋꿋하게 지켜온 나전장 보유자 선생님들의 노고에 부응하여, 전통 나전칠기가 우리 현대인들의 생활에도 보다 깊숙이 들어와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때가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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