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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 이야기

[국내리포트] 우리 옛 부채의 원형을 찾는 부채도사

  •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12-11-26 조회수5710

우리 옛 부채의 원형을 찾는 부채도사
전라북도지정무형문화재 선자장 엄재수

 

안방 극장 속 부채

 

 

출처: sbs 드라마 '신의'(좌), mbc 드라마 '아랑사또전'

 

 인기드라마 신의와 아랑사또전의 장면이다. 주인공들은 각자 접었다 폈다하는 쥘부채를 들고서 적들과 싸우는 부채 무공을 선보인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필연적인 부채 무공. 이것은 단순히 부채가 소품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부채가 우리 선조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와 우리가 부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반영해 주는 좋은 예시다.

 

 

전주 한옥마을 제일명소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전주시 한옥마을, 가로가 잘 조성된 길 한 곳에 잘 지어진 기와집 한 채가 있다. 바로 미선공예사. 부채 모양으로 만든 간판이 이 집이 무얼 하는 곳인지 단박에 설명해준다. 지붕 높이도 제일 높고 마당 없이 가로에 바로 면해있는 탓인지 이 길에서 단연 돋보이는 집이다. 그래서일까 미선공예사는 쉴 틈 없이 사람이 드나든다. 사람이 꽉 들어차 있곤 하는 그곳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부채천국 미선공예사

 미선공예사는 선자장 엄재수 선생님의 작업장이자 전시관이며 판매장이다. 부채가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전시장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다양한 종류의 수많은 부채가 건물 전체를 장식하고 있었다. 입구가 위치한 곳은 판매장이고, 왼편 별실로 들어서면 따로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어 선생께서 고생하여 수집한 부채들로 가득하다.
 이 전시관의 사연인즉 가업을 이어받은 엄재수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아버지(무형문화재 10호 선자장 엄주원)를 기리기 위해 아버지의 유품을 비롯하여 그분이 만들고자 하셨던 옛부채들을 복원한 작품을 전시하였다. 전시관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아버지에게 사사받는 장면의 사진과 아버지의 무형문화재증서이다. 이런 사연을 알고 보니 백개 부채의 아름다움 이전에 아버지에 대한 효성과 그리움이 주는 감동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렇다면 엄재수 선생께서 이어나가는 부채의 세계는 어떤 곳인지 알아보겠다.

 

 

 


최고급 부채 합죽선
접었다 폈다할 수 있어서 손에 쥐고 다니는 부채를 쥘부채라고 한다. 합죽선은 쥘부채에 해당하는 부채로서 옛 선비들이 외출 시 계절에 상관없이 손에 들고 다녔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合竹扇은 한자 그대로 대나무를 합하여 만든 것이다. 대나무를 두 겹으로 붙여서 살을 만들고 한지를 접어 바른다. 쥘부채는 한국에서부터 중국으로, 먼 나라 스페인까지 전래되었다고 한다. 합죽선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 고유의 방식이다. 대나무를 아주 얇게 깎아 두 겹으로 마드는 공정은 매우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최고급일 수밖에 없고, 때문에 아무나 들고 다닐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다. 합죽선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100번이 넘는 손길을 거쳐야 한다. 전라감영 소속의 선자청에서 만드는 합죽선은 임금에 진상될 정도로 으뜸으로 쳤다고 하며, 오늘날에 전주 특산품으로 맥을 잇고 있다.

 

 

선자장 엄재수
 전주의 합죽선은 삼대맥으로 분류할 수 있다. 돌아가신 이기동 선생, 현재 선자장이신 김동신 선생(라씨 가문을 잇는다)과 엄재수 선생 세 분이 각자의 스타일을 계승하고 있다. 이 중 찾아뵌 분은 한옥마을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엄재수 선생님. 긴 머리를 가지런히 묶고 부채를 쥐고 다니는 모습이 도사와 흡사했다.
 전시관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재현 작품’이라는 푯말이었다. 만들던 방식대로 만들면 그만이지 무얼 재현한다는 것일까?

 


 선생께 직접 설명을 듣자니, 부채에도 근대 이후에 많은 변형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민족 말살정책으로 부채가 탄압받았던 것이다. 꼿꼿한 선비들의 필수품으로 부채는 그들의 사상과 혼이 담긴 물건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부채를 만드는 도구도 달라졌고 형태, 재료도 시대마다 변화가 있었다. 예를 들면, 칼질을 해서 다듬던 대나무를 톱질로 하게 되었고, 선추를 다는 고리는 알루미늄으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황동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합죽선은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여 매우 개인적인 물건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거나 물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때문에 유물로 남은 것이 거의 없어 옛 부채를 복원하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합죽선을 재현하기 위해서 자료를 찾던 중 아버지의 유품 속에서 부채 전시 도록을 발견한 일이 선생에게는 가장 큰 사건이었던 듯하다. 그 책 한권으로 잃어버렸던 선을 찾고, 겉대의 장식에 나전기법이 어떻게 사용되어졌고 대모가 어떻게 올려졌는지를 알아내어 재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소의 다리뼈와 물소뿔, 거북이 등껍질을 남겨주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못다 하신 작업을 선생께서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리라.   

부채 속살에 옻칠이 올라가지 않아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겉대에 얇게 말아올려야 하는 대모(거북이 등껍질)를 다루기 힘들어 고생하기도 하셨다지만 그런 선생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합죽선의 원형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선생의 작품에는 겉대를 대모 또는 우각으로 장식한 것, 전주 특산물이라는 금반죽으로 장식한 것, 나전으로 장식한 것 등이 있고, 속살에는 흑칠, 주칠 등의 옻칠을 한 것과 선면(종이)에 황칠, 옻칠 등을 한 것 등 다양하다. 전주 한옥마을의 공방에 가면 직접 볼 수 있다.

아무리 아버지께 배운 일이라고 해도 선생은 장인 이상으로 부채에 대해 해박해 보였다. 부채에 대해 정리가 된 책이나 자료가 없는 상황임에도 전문적 지식을 갖추었다는 것은 선생 스스로 노력하고 찾아다니며 연구한 고생을 짐작케 한다. “항상 연구하는 자세로 살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것이다” 선생의 아버지가 항상 하시던 말씀이라고 한다. 가슴에 강렬하게 박히는 말이었다.

 


전주 부채를 더 알고 싶다면

엄재수 선생님의 다음까페 http://cafe.daum.net/umjaesufan
전주부채문화관 사이트 http://fan.jjcf.or.kr/
JTV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바람의 길’

 

글·사진·동영상 :  국립무형유산원 기자단 황수경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전통이란 끈에 대해 고심하며 공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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