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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유산 이야기

[해외리포트] 흑백 위 아름다운 예술을 담다 - 한중의 나전칠기

  • 작성자관리자 등록일2012-12-24 조회수5376

흑백 위 아름다운 예술을 담다 ? 한중의 나전칠기


한국과 중국은 예부터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영역에서 많은 교류를 나눴을 만큼 가까운 나라이다. 양국의 오랜 교류는 각 영역의 발전을 추진시키고, 문화를 함께 창조하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그 중, 현재에도 많이 이용되는 도료(?料 )중 하나로, 옻나무에서 채취한 칠(漆)을 일상용구 및 공예품, 미술품의 표면에 칠하는 기술 및 칠한 공예품인 칠기(漆器)의 공예기법 중 하나인 나전(螺鈿)공예를 통해 한중 간의 교류가 얼마나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또한 현대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지 알아보았다.


칠기는 습기, 고온 및 부식을 견디는 등의 특수한 기능을 가지고 있어 중국에선 예부터 “滴漆入土,千年不?(적칠입토, 천년불괴: 칠기가 땅에 묻혀도 천년 동안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최초로 칠기를 만든 중국고대사람들은 칠기의 용도를 크게 병기(兵器), 예기(?器), 악기(?器), 명기(冥器)로 보았다. 후베이(湖北)수이조우(?州)의 증후을(曾侯乙)묘와 후난(湖南)창샤(?沙)의 마왕두이 한묘(馬王堆漢墓)에서는 대량의 정교한 칠기가 출토되었다. 또한 칠을 연구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문서는 일찍이 중국 오대(五代)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 당대(唐代,서기 618년~907년)에 접어들어선 칠기가 매우 성행하였다. 윤이 나는 자개 조각을 여러 문양으로 박아 넣거나 붙인 공예품인 나전칠기(螺?漆器)와 금은으로 만든 문양을 상감(?嵌)하여 만든 금은평탈기(金銀平脫器) 등 정교하고 우수한 제작기법들이 이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의 칠기는 공예기법과의 결합을 통해 당나라 풍의 대표 공예품이 되었고, 또한 당나라 때에 유행하던 “평탈(平?)” 기법이 신라, 백제, 고구려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렇다면 나전칠기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는 것일까? 간단하게 알아보자.


1. 재료선발과정: 도안(圖案)에 따라 나전기법에 사용될 재료들을 준비한다. 
 

 

 


2. 밑그림 붙이기: 조개편의 크기에 따라 미리 준비한 밑그림을 재료에 오려 붙인다.
 

 

 


3. 활질로 구멍뚫기: 밑그림에 따라 활질로 자개에 구멍을 뚫는다. 
 

 

 


4. 절편(切片): 특수 제작된 도구로 도안에 필요한 문양에 따라 재료들을 가공한다. 이때는 세밀한 작업이 필요로 하며, 알맞게 가공된 재료들은 이후 색상에 따라 분류시켜 놓는다.

 

 

5. 종이본에 자개붙이기


 

 

 

6. 인두로 자개 눌러 붙이기

 


7. 종이본떼기: 이 과정에서는 칠기에 붙여져 있는 조개절편에 문양을 넣는 작업도 진행된다. 이때에는 조개절편에 주름을 넣거나 문양을 넣기 위해 나전(螺鈿)장들이 다시금 칠기표면을 가공하며, 관련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개문(?紋)”이라고 불린다.

 


 
8. 옻칠더하기

 

 

9. 칠 긇어내기

 

 

10. 인두로 마름질, 광내기

 


『송사·식화지(宋史®食?志)』 시박사(市舶司)편에서는, 칠기는 푸지엔(福建)시의 시박사 에서 한국, 일본, 동남아 등 각국과의 무역에서 자주 쓰이던 품목 중 하나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나라로, 중국과 일본과의 무역에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했으며, 중국과 일본간의 칠기교류에서 얻은 경험과 자국 칠기의 특정을 조합해 칠기의 발전을 이끌어냈다. 이러한 사실은 송인(宋人)방작(方勺)이 편찬한『박택편(泊宅?)』에서 언급된 일본의 ‘박패(薄貝)나전’이 중국으로 유입된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일본의 박패(薄貝)나전은 후에 고려시대에 이르러, 몇 번의 수정을 통해 한반도 칠기 공예의 주요특징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일본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금이회신라금(金泥?新?琴)과 첩금박신라금(?金箔新?琴)와 같은 유물이 이러한 추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또한,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는 문종 원년(文宗元年) (1046~1083년) 고려가 요(遼)에 백동나전회화(白?螺???)와 같은 여러 칠공예품을 선물로 보낸 기록이 남아있으며, 1123년 송나라의 사신 서긍(徐兢)은 『고려도경』에서 “그릇에 옻칠하는 일은 그리 잘하지 못하지만 나전 일은 세밀하여 귀하다고 할 만하다.”며 고려의 나전칠기 기술을 언급한 것으로 볼 때, 고려시대 나전칠기는 독자적인 양식에서 공예기술을 더욱 발전시켰을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명청(明?)시대에 이르러, 양국의 봉건제도가 조금씩 쇠락하기 시작했고 서양인들의 침략과 대외개방 및 국내 외의 여러 전쟁으로 인해, 두 나라의 칠기역사는 조금씩 쇠퇴기간에 접어들었다. 당시의 중국의 칠기는 수와 당의 공예방식을, 한국의 칠기는 고려시대의 방식을 유지하는 선에서, 더 이상 나라에서 주관하는 것이 아닌 민가에서 자유로이 생산하는 체제를 이어가는 것에 그쳤기 때문에 당시의 칠기교류사의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는 편이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칠기공예 관련 고적은 명나라 때의 나전기술공인 황청(?成)이 정리한 『휴식록(?飾錄』으로 원본은 일본에 소장되어있다.


한·중 수교 이후, 양국의 칠기교류가 갈수록 친밀한 관계를 다져 가고 있다. ‘94년 한·중 칠기교류 서울 전(展)’ 과 ‘96년 중·한 칠기교류 베이징(北京)전(展)’은 칠공예 예술가들간의 학술교류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두 전시회를 통해 양국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문물’을 어떻게 ‘현대적 스타일’의 예술품으로 발전시켜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던 상황에서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등 많은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2009년 2월 28일, 한·중 문화교류협회의 회장인 강원구와 그의 일행이 중국의 지산현(稷山?) 에 위치한 공예공장에 들려 칠기의 제작을 조사할 당시, 중국 전통나전상감칠기의 제작과정과 상품 진열실을 관람한 이후, 중국의 전통수공업에 칭찬을 아까지 않았으며, 나전상감공예가 얼마나 정교하고 생동감이 있으며, 특히 금속으로 적어낸 서예의 기세가 드높은지 알게 되었다고 밝혔으며, 또한 ‘지산나전(稷山螺?)’이라는 네 글자를 적은 후, 공장장인 리아이전(李?珍)에게 선물하고, 기념사진을 남기는 등 현대에 이르러 칠기와 관련된 한중간의 교류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끝으로, 고대문물과 현대문물은 인류유산의 핵심부분으로 물질문명의 산 증인과도 같으며, 예술가들의 지혜를 ‘응집’한 소중한 문화적 재산 중 하나이다. 하지만 어느 한 물건이 고유의 기능을 상실하면, 단지 박물관에서나 소장되고 있는 ‘유물’에서 그쳐질 것이다. 그렇기에 시대에 맞춰 계속된 발전을 통해, 칠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인류가 아끼고 소중히 할 수 있는 기념적인 문물이 될 수 있도록 그 제작과정 및 보호사업 등과 관련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고대문물과 근대문물의 교육적 가치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으며, 그러한 면에서 칠기를 통해 역사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은 예술가 및 현대인들에게 많은 자극을 주고 있다. 한편, 비록 칠기는 예부터 내려오는 중요한 기물(器物) 중 하나지만 기존의 기물들은 어느 정도 봉건주의에 물들여진 고대 예술가들의 이념이 담겨 있어, 칠 공예품을 현대적인 기능을 갖춘 예술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현대적인 생각이 포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현대 예술가들은 새로운 디지털기술 및 과학적인 문화지식으로 공예품의 기본설계를 잡는 만큼,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칠공예품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중 양국은 ‘칠기’라는 기물(器物)만을 통해서도 수많은 예술가 및 대중들을 문화적으로 연결시켜 놓았다. 이러한 교류의 역사가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계승하면, 고대 인류가 현대인들에게 남겨놓은 ‘의미’있는 문물을 계속해서 ‘이용’해 나가고, 그 속에서 양국의 예술가들의 계속된 발전과 나아가서 문화교류의 발전에도 많은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자료:
『동아주칠예(東亞洲漆藝) 한·중·일 칠기』, 북촌미술관, 2008
『중국칠기의 미』, 북촌미술관, 2007
『한눈에 보는 나전칠기』, 한국공업 설계문화진흥원, 2011
왕호(王琥), 『칠기개요』, 장수(江?)미술출판사, 1999
션푸원(沈福文), 『중국칠기미술사』, 인민미술출판사

 

 

국립무형유산원 기자단 / 주애림

한국과 중국의 문화재를 공부하고 체험하며, 멀티미디어 및 다양한 교류프로그램을 통해 양국간의 문화소통 및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페이스북(girgirgir123@hanmail.net)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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